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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들

기아 T8D엔진

by 유광재오일 2018.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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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스물 한 번째 이야기는 기아자동차의 엔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엔진은 현대자동차에 인수되기 전의 기아자동차가 보여주었던 모험적인 성향과 성능우선주의를 대변하는, 기아자동차의 독자개발 엔진, ‘T8D’다.


독특한 설계가 돋보이는 기아자동차의 독자개발 엔진

기아 T8D 엔진은 기아자동차의 독자개발 엔진으로, 1995년 콩코드의 후속 모델로 등장한 크레도스에 도입되면서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 기아 T8D 엔진은 보어(실린더 내경) 81.0mm, 스트로크(행정 길이) 87.0mm에 총배기량 1.8리터(1,793cc)의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이다. 크레도스 탑재분을 기준으로, 압축비는 9.4:1에 최고출력 130마력/6,000rpm, 최대토크 17.0kg.m/4,500rpm의 성능을 냈다.



 

크레도스에 탑재된 기아 T8D 엔진은 과감한 설계가 돋보였다. 협각 밸브의 채용을 시작으로 피스톤에는 그래파이트 코팅을 적용하는가 하면, 피스톤을 확실하게 냉각하기 위한 오일제트 기구까지 도입했다. 그 뿐만 아니라, 피스톤 핀은 고정방식을 전부동식(Full-Floating Type)으로 만들었다. 이 구조는 피스톤 핀이 피스톤과 커넥팅 로드 사이 어느 곳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아 자유롭게 움직이는 형태로, 중~소배기량 엔진의 고속운전에 유리한 구조다.


이렇게 만들어진 T8D 엔진은 상당한 수준의 고속성능을 자랑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고회전 지향의 엔진 설계 탓에 순정 상태에서도 7,000rpm 내외의 고속운전이 가능했다. 독특한 설계사상으로 완성되어 크레도스에 처음 도입된 기아 T8D 엔진은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장영실상까지 수상했다. T8D 엔진은 이후 초대 세피아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세피아’에도 탑재되었다. 뉴 세피아에 도입된 사양은 139마력으로, 이 엔진을 탑재한 뉴 세피아는 196km/h의 최고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아 T8D 엔진은 장점만 있는 엔진은 아니었다. T8D 엔진의 단점으로 지목되는 부분들은 고회전 성능을 우선시한 설계 사상에 기인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T8D 엔진은 경쟁사인 현대자동차의 베타엔진과 비교를 많이 당했다. T8D 엔진은 베타 엔진에 비해 저회전 성능이 뒤처지고 연비도 나쁘며, 정비소요도 많은 데다, 순수 국산 엔진이면서도 엔진 자체의 단가가 높은 편이었다. 국내 시장에서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음과 진동에 대한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 때문에 T8D 엔진은 경쟁사인 현대자동차의 베타 엔진에 비해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아 T8D 엔진은 기아자동차가 1996년에 내놓은 스포츠카, 엘란의 심장으로도 쓰였다. 이는 기아가 원 제작사인 로터스로부터 엘란에 대한 권리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GM 및 그 계열사의 부품들이 제외되어 누락된 부품들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만 했던 사정에서 비롯되었다. 이 때 누락된 품목 중에는 파워트레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엘란이 당시 GM 산하였던 이스즈(Isuzu)의 엔진과 변속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기아는 엘란의 새 파워트레인으로 독자개발한 T8D엔진을 선택했다.


하지만 기아는 엘란의 엔진룸 크레도스와 똑같은 사양의 T8D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기아는 스포츠카에 합당한 심장을 원했고, 이에 엘란만을 위한 전용 사양의 T8D 엔진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엘란에 얹힌 T8D 엔진은 크레도스의 T8D와는 형식명도 다르며, ‘Hi-Sprint’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다. 엘란 전용 T8D 엔진은 크레도스의 T8D 엔진과는 다른 헤드를 사용한다. 이는 하이 듀레이션 캠(통칭 하이캠)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이캠은 밸브를 더 많이, 더 빠르게 여닫을 수 있게 하여, 자연 흡/배기 가솔린 엔진의 성능 강화에 쓰이는 캠이다.


이를 통해 최고출력은 기존 130마력에서 151마력으로, 최대토크는 기존 17.0kg.m에서 19.0kg.m까지 높였다. 태생부터 고회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고속운전성능을 중시한 T8D 엔진의 성격을 더욱 강화한 격이었다. 엘란의 T8D 엔진은 스포티한 주행을 즐기는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개성적인 엔진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아 T8D 엔진은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로 인수된 이후에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기아 플랫폼 기반의 모델들에 계속 사용되었다. 기아 T8D 엔진을 사용한 자동차로는 중형세단 크레도스와 크레도스2, 크레도스2의 스테이션 왜건 모델인 파크타운이 있다. 준중형 세단으로는 뉴 세피아와 그 후속 모델인 세피아2, 그리고 세피아2 기반의 5도어 패스트백형 모델인 슈마 등이 있다. 그리고 세피아2 및 슈마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스펙트라와 스펙트라 윙의 최상위 모델에도 T8D 엔진이 탑재되었다. 이 외에도 크레도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MPV 모델 카렌스와 카렌스2의 1.8 모델에도 이 엔진이 사용되었다.


글 : 박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