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세계에서 모델의 대를 잇는 것은 정통성을 이어가고 브랜드를 공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다음세대 모델을 내놓지 못하고 사라지는 비운의 모델도 있기 마련이다. 차세대 모델 없이 1세대로 단종된 자동차들의 속사정을 짚어봤다.
현대차 마르샤
배기량이 절대적인 차급의 기준이 되던 시절 V6 2,500cc 엔진을 탑재한 마르샤는 쏘나타와 그랜저를 잇는 고급 세단이었다. 1995년 데뷔한 마르샤(Marcia : 이탈리아어로 ‘행진’)는 쏘나타를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각종 편의사양을 달리하고 우드그레인을 뜸뿍 활용하는 한편 그랜저 엔진까지도 선택할 수 있어 차별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2세대 모델은 나오지 않았다. 쏘나타가 엔진을 키우는 등 라인업을 더 확충하면서 마르샤의 고급화 요소를 상당부분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렸던 국산 세단 시장의 틈새에서 자리잡지 못한 것.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로선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비용보다는 기존 모델의 상품성을 높이고 선택권을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차 베라크루즈
2004년 국내 SUV 시장의 확대와 함께 고급 SUV의 포문을 열었던 모델로 LUV(Luxury Utility Vehicle)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던 국산 SUV였다. 세단의 부드러운 주행감성과 SUV의 실용성을 함께 누리자는 목표로 탄생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기아차의 모하비와 함께 국내 대형SUV의 양대축을 이루며 세계 각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엔진도 승용 모델용으로 개발된 현대 S엔진이 들어가 250마력이라는 튼실한 힘을 냈고 후기형에서는 S2 엔진으로 변경되면서 260마력까지 올랐다. 하지만 S2 엔진의 환경기준 미달과 싼타페의 연장형 모델인 맥스크루즈로 인해 설 자리를 잃기 시작하면서 점차 자리를 내주고 2015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현대차 아슬란
2014년 현대차는 전륜 구동 플래그십 이라는 다소 모호한 컨셉으로 아슬란을 선보였다. 오랜 세월 현대차의 플래그십 자리를 맡아왔던 그랜저의 윗급 모델로 독립 브랜드로 나오기 이전 제네시스와의 간극을 메우는 모델이다.
자동차의 상품성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아슬란 역시 제네시스에 눌리고 그랜저에 치이면서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 변변한 신차 효과도 한번 내지 못하면서 월 30대 미만 판매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뒷전으로 내려앉았다. 루머에 따르면 아슬란의 자리는 그랜저의 축거 연장형 모델이 대신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차 오피러스
2003년 데뷔한 오피러스는 현대차와 합병이전 기아차의 대표 세단으로 다이너스티의 뒤를 잇는 고급 대형 세단으로 개발됐다. 현대차와 합병 이후에는 K3부터 K9까지 기아차의 세단 라인업이 정비되기 이전 오피러스는 기아차의 사실상 플래그십이었다. 4개의 둥그런 헤드램프와 격자 그릴 그리고 풍만한 볼륨감을 가진 차체는 우아했으며 주행감각도 부드러워 사모님들의 차로 유명했다.
하지만 기아가 K시리즈로 세단 라인업을 정하고 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모호해졌고, 판매량도 줄어들었다. 2009년 후기형 모델이 마지막으로 출시됐을 무렵에는 기아차 호랑이코 그릴 등 패밀리룩도 적용했다. 또 그랜저 TG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하이패스와 사각지대 경고 그리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상당히 개선한 모델이었다.
한국GM 알페온
한국GM이 부평공장에서 생산해 공급하던 알페온은 2015년 9월 쉐보레 임팔라에게 자리를 내주며 단종의 수순을 밟았다. 유선형 차체와 날선 프론트 디자인 여기에 여유로운 인테리어를 가진 알페온은 뷰익의 라크로스의 한국형 모델이었다. 단종원인은 부진한 판매량과 경쟁모델 대비 부족한 상품성 때문.
완전 수입형 모델인 임팔라는 알페온을 뛰어넘는 판매량을 보였지만, 공급량에 한계가 있어 절반의 성공으로 기록되는 모델이다. 게다가 판매량 1만 대를 넘으면 국내 생산을 검토하겠다던 한국 GM(당시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1만 대 판매량을 이뤄냈음에도 말대로 ‘검토’만 하고 국내 생산을 포기했다.
차세대 모델로 이어지지 않는 원인
위에서 살핀 모델들이 대를 잇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다. 이중에서 가장 큰 건 역시 판매량. 애초에 노렸던 시장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판매량이 바닥을 기는 경우 단명할 수 밖에 없다. 또 오피러스처럼 회사의 정책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인기가 있어도 공급에 어려움을 겪다 사라진 경우도 있다.
한편, 모델이 단종되었다고 영원히 빛을 보지 말란 법은 없다. BMW 8시리즈처럼 수년간 마니아들에게만 회자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컨셉트카가 나오면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김경수 기자 kks@encar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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