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인 자동차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처럼 스티어링 휠을 쉽게 돌릴 수 있게 된 시기는 의외로 짧다. 칼 벤츠가 제작한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우 핸들바의 손잡이를 잡고 조향하는 형태였는데, 자동차의 주행 속도가 점점 빨라짐에 따라 이보다는 수월한 조향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고 원운동을 통해서 기존보다 조금 더 쉽게 조향이 가능한 스티어링 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때도 편안한 운전은 쉽지 않았는데, 조향 보조장치가 없어서 스티어링 회전에 힘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향의 문제는 ‘파워 스티어링’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해결되었는데, 당시에는 엔진의 힘을 빌려 유압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조향을 좀 더 쉽게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출력에서 약간 손해를 입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은 모듈의 크기가 커서 엔진룸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했고 엔진의 힘을 빌리기 때문에 연비 면에서도 불리한 점이 있었다.
이러한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전기 모터의 힘을 빌려 조향을 쉽게 하는 EPS다. 1988년에 일본 제이텍트(JTEKT) 그룹이 최초로 양산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EPS의 장점에 주목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잇달아 적용하면서 지금은 다른 부품 제조사에서도 EPS를 제작하고 있다.
흔히 EPS라고 하면 대부분 스티어링 칼럼에 직접 모터가 붙어있는 C-EPS와 랙에 모터가 연결되는 R-EPS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EPS는 그동안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왔으며,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도 구동 모터가 적용되는 부분과 배열 타입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그래서 이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EPS에 대해 설명하고 미래의 스티어링 휠이 될 스티어-바이-와이어에 대해서도 덧붙이고자 한다.
C-EPS
기본적으로 조향 시스템을 크게 나누면 랙, 피니언, 칼럼으로 나눌 수 있다. C-EPS도 모터가 적용되는 위치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흔히 접할 수 있는 방식은 칼럼에 모터가 적용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모터와 ECU를 엔진룸이 아닌 실내에 적용할 수 있어 방수 작업이 필요하지 않으며, 엔진과 변속기를 배치하는 레이아웃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엔진룸에 여유 공간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공간이 중요한 경차 또는 소형차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EPS를 구성하는 모터와 ECU, 토크 센서, 감속 기어가 하나의 유닛으로 뭉쳐있는 경우가 많으며, 구조가 간단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점은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타이밍과 랙이 움직이는 타이밍 간에 시간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직결감이 줄어든다는 것이지만, 현재는 제작 기술이 올라갔기 때문에 시간차를 많이 줄이고 있다. 직결감 향상을 위해 모터가 칼럼이 아닌 피니언에 적용되는 P-EPS도 있지만 사용하는 자동차의 종류는 적으며, 적용되는 위치로 인해 C-EPS로 분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R-EPS
조향을 보조하는 모터가 랙에 적용되면 R-EPS가 된다. 그 안에서도 모터를 랙에 결합하는 방식과 감속 기어, 토크 센서의 위치 선정에 따라 다양한 모델로 갈라지게 되며 자동차의 용도와 특색에 따라 선택하여 적용하게 된다. 이 방식의 강점은 높은 강성과 뛰어난 동적 성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DP-EPS
‘듀얼 피니언 타입’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감속 기어가 랙과 수직으로 물리는 것이 특징이다. 스티어링 휠 축으로부터 어시스트 유닛을 분리하여 장착 자유도를 높인 것이 특징이지만 감속 기어와 모터의 크기로 인해 엔진룸 설계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준중형 이상의 크기를 갖고 있거나 엔진이 차체 뒤에 있는 경우에 주로 사용하게 된다. 이 방식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자동차로는 혼다 뉴 NSX가 있다.
RP-EPS
‘랙 페레럴 타입’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토크 센서와 모터의 위치는 DP-EPS와 동일하지만 감속 기어가 랙과 병렬로 물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타입의 장점은 감속 기어를 병렬로 배치하기 때문에 크기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유닛 자체가 작아지고 엔진룸 내에 설치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 방식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자동차로는 렉서스 LC500이 있는데, 스포츠 쿠페인 이 차의 특성 상 격렬한 스티어링 조작에도 오류 없이 반응할 수 있도록 예비용 파워 어시스트 시스템이 추가된다.
RD-EPS
‘랙 다이렉트 타입’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랙 자체에 모터와 감속 기어가 통합된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서 감속 기어의 마찰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으며, 자동차의 에너지 효율도 높일 수 있다. 또한 스티어링을 통해서 앞바퀴와의 직결감을 높일 수 있기도 하다. 이 방식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자동차로는 토요타 크라운이 있다.
H-EPS
‘하이브리드 타입’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기존의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엔진 대신 전기 모터를 통해서 유압을 얻는다는 점이 다르다. 전기 모터로 제어하기에는 힘이 충분하지 않은 대형 트럭 또는 버스에 사용되며, 안전성과 편안함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피가 크다는 단점이 있어 승용차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
현재 자동차에 적용되고 있는 EPS도 모터의 제어를 통해 차선 유지기능 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스티어 바이 와이어’라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 자율주행 시대가 다가오면 스티어링 휠이 랙과 직접 연결되는 형태가 아니라 전기 신호를 통해 랙을 제어하는 진정한 ‘스티어 바이 와이어’가 필요해 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의 EPS 전문 부품 제조회사인 제이텍트는 레벨 4또는 5의 자율주행이 구현되려면 스티어 바이 와이어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인피니티 Q50S에 적용된 ‘다이렉트 어댑티브 스티어링’이 기존의 EPS에서 ‘스티어 바이 와이어’로 진화하는 중간 과정이라고 할 만 하다. 물론 이 시스템도 모든 시스템이 고장날 경우를 대비하여 피니언과 랙을 연결하는 기계적인 백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말이다.
미래의 자동차가 전동화와 자율주행을 진행한다고 해도 곧바로 운전자가 필요없는 4단계 또는 5단계의 자율주행은 진행하지 못할 것이며, 만약 그렇다고 해도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쥐어야 하는 상황은 오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율주행 상태에서 운전자가 스티어링을 넘겨받았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스티어링의 이질감을 없애거나 상당히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질감으로 인해 운전에 혼란을 느껴서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기술은 스티어 바이 와이어를 완벽하게 다듬었을 때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자동차 제조사 또는 부품 제조사들이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해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스티어링 휠은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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