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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들

전기차시대와 엔진사운드

by 유광재오일 2017.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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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 소리만으로 차종을 맞추는 꼬마아이가 등장했다. 회사별 모델별로 미세하게 다른 엔진음을 듣고 기가 막히게 자동차를 맞추는 아이. 그런가 하면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어떤 사람이 배기음 튜닝을 즐겼다는 뉴스가 한동안 포털사이트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만큼 자동차에서 소리라는 개념이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별로 나름의 엔진음 혹은 배기음을 만들어내어 그것으로 자사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음역대나 박력을 통해 특정 차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하며, 이를 통해 엔진사운드는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FUN요소가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스피커로 전자적인 엔진음을 내보내는 모델까지 있을까.



  
  하지만 자동차의 사운드를 즐기는 이런 문화가 엔진차의 초창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동차 역사가 시작될 무렵인 1900년대 전후에 엔진차는 시끄럽고 거추장스럽고 다루기 어려우며 냄새까지 나는 이상한존재였다. 다른 동력기관을 갖춘 자동차들보다 인기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1900년도에 미국에 등록된 자동차 현황을 보면 당시 가장 보편적인 동력원이었던 증기기관을 이용한 증기자동차가 40%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였고, 그 다음으로 38%를 차지하고 있는 게 놀랍게도 전기자동차다. 귀족들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전기차를 선호해서 재력가들이 모인 뉴욕의 경우 50%가까이가 전기차로 채워지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솔린을 사용한 엔진자동차는 22% 점유율로 꼴찌였다. 그만큼 엔진은 가장 인기가 떨어지는 자동차 동력원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거기서 나오는 시끄러운 엔진소리도 당연히 눈살 찌푸려지는 대상이었다. 그랬던 엔진이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주행거리의 이점과 변속기의 발달로 점차 가장 이상적인 동력원으로 각광 받기 시작하면서 엔진음을 즐기는 문화까지 태동하게 된 것이다.



  
  요즘 자동차업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전기차다. 날마다 쏟아지는 자동차 뉴스에 전기차 이야기가 매우 자주 등장한다. 자동차회사들은 본격적으로 대중판매용 전기차 출시에 나섰고, 나라에서는 세금감면, 주차비와 고속도로 톨게이트비 할인 등으로 구매를 독려하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전기차 지원금을 받기 위해 밤새 줄 서는 수고도 마다하고, 쉐보레 볼트 EV등 몇몇 차종은 판매직후 완판되어 우리나라에서는 돈다발을 쥐고 가도 살 수 없을 정도다. 물론 볼트 EV나 테슬라 모델3 등은 공급되는 물량 자체가 너무 적다는 핸디캡도 있지만.



  
  전기차세상이 당장 도래하진 않겠지만 인기의 상승세가 급격하다 보니 100년에 걸쳐 정착된 [엔진음을 즐기는 문화]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갖게 된다. 전기차는 주행 시 이렇다 할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유령 같은 고요함이 전기차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소리를 내며 내 명령에 반응했던 엔진차 같은 즐거움은 없다. 이쯤에서 예상해볼 수 있는 자동차 사운드의 미래는 두 가지다.



1. 엔진차 같은 사운드를 전기차에서 실현하는 것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미 시판중인 전기차들은 스피커를 통해 전자식 주행사운드를 제공한다. 첫째는 보행자에게 자동차를 인식시키기 위한 안전장치로서의 사운드고, 둘째로는 운전자에게 제공하는 FUN요소의 사운드다. 물론 성격이 다르기에 둘의 사운드는 다른데, 후자의 경우 전통적 엔진사운드를 들려주지만 이런 기능을 제공하는 전기차는 아직 드물다.


2. 엔진차의 사운드가 낡은 유물이 되는 것

전기차가 일반적인 자가용으로 널리 퍼지고, 흔하게 이용하는 이동수단이 되면 사람들은 전기차의 고요함에 익숙해질 것이다. 매우 조용한 실내외가 당연하게 되는 것이다. 주택가나 도심에서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사라지니 사회적 이점도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가끔씩 지나가는 엔진차의 소리가 오히려 어색해질 수 있다. 마치 조용한 KTX 선로에 시끄러운 증기기관열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이런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면 엔진사운드를 즐기는 것은 일부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그들만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내려갈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어디서 엔진소리 마음껏 울리며 달리기도 눈치가 보일 것이다
  유사한 사례가 있다. 1900년대 초, 증기자동차에서 나는 증기기관의 사운드도 지금의 엔진사운드처럼 나름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 증기 뿜어낼 때의 소리를 튜닝해주는 업자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낡은 구동기관의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물론 호기심으로 잠깐 들어볼 수는 있겠지만.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M, AMG 등등우리에게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수 많은 명차들의 황홀한 엔진사운드는 과연 전기차시대에 어떻게 취급받게 될까? 다른 어떤 형태로 전기차에 이식될까? 아니면 낡은 유물이 되어 점차 사라질까?
여러 가지가 급변하게 될 앞으로의 전기차 세상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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