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모터스포츠 역시 다양한 종목과 차종, 형식으로 경기를 치른다. 최고의 드라이버를 가리기 위한 무대도 여러가지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도전의 장소, 누군가에겐 갈망하는 꿈의 장소이기도 한 모터스포츠 레이싱 경기장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상설서킷
우리가 흔히 ‘서킷’이라 부르는 곳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서킷이 자동차 경주를 위해 건설된 트랙이다. 일반 도로에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극단적으로 압축해 디자인한 곳이라고 보면 된다. 긴 직선, 산악 국도에서 볼 법한 아주 빡빡한 *헤어핀, 더불어 속도를 줄이기 위한 목적의 연속 코너인 시케인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국내에 있는 영암 KIC나 인제 스피디움이 바로 상설 서킷이다. 독일 뉘르브르크링처럼 25km에 달하는 거대 서킷도 존재하지만, 대체로 상설서킷의 길이는 4~5km다.
이 서킷은 설계할 때 몇 가지 사항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데, 일단 *FIA가 지정한 안전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나아가 각 서킷만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해당 지역의 지형을 잘 이용해야 한다. 사실 서킷은 규칙만 잘 지킨다면 도로보다 안전하게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상설 서킷은 대개 이륜차를 포함한 대부분의 모터스포츠를 개최할 수 있다.
* 헤어핀 : 트랙에서 180도 곡선의 U자형 커브를 이루는 구간을 말한다.
* FIA :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국제 자동차 연맹으로 모터스포츠를 관할하는 가장 큰 기구다.
#랠리코스
흔히 랠리라고 하면 길이 없는 곳을 달리는 ‘오프로드 레이스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WRC와 같은 ‘온로드 레이스’가 더 흔하다. 랠리 코스는 도심과 꽤 떨어진 산악 혹은 시골에 주로 만들어지고 종종 비포장도로를 포함할 뿐이다. 산 중턱을 통과하거나, 포도밭 사이를 지나가거나, 시골 마을 좁은 골목길을 누비는 등 어떻게 보면 우리 현실에 가장 가까운 트랙이라고 할 수 있다.
랠리코스는 서킷과 달리 자동차 경주를 위해 조성된 트랙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맞는 특화된 드라이빙 스킬이 필요했는데, 그 중에 드리프트나 스칸디나비안 플립과 같은 기술도 있다. 일반 서킷에서 이렇게 달렸다가는 절대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다. 반대로 서킷에서와 같은 주행법은 랠리에서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코너의 특성 때문이다. 좁고 꼬불꼬불한 산간 오지나 농가 주변, 울퉁불퉁한 바위가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를 풀숲과 관목숲 등의 코스를 달리는 랠리 드라이버는 절대 혼자만의 판단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안전상의 이유로 *코드라이버(co-driver)의 페이스 노트에 의거해 경기를 진행한다.
*코드라이버 : 랠리 경기는 반드시 2명 이상이 랠리 카에 타고 진행된다. 이때 페이스 노트를 작성하고 내비게이션을 맡는 등 드라이버의 주행을 보조하는 동승자를 코드라이버라 한다.
#힐클라임· 다운힐
산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힐클라임·다운힐 코스는 아마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트랙일 것이다. 포장과 비포장을 넘나들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차이점은 가파른 산악 지형을 무대로 달린다는 것. 미국의 파이크피크 인터내셔널 힐클라임(PPIHC) 같은 대회가 이처럼 구절양장 산악 도로에서 개최된다. 앞서 ‘원초적’이라 표현한 것은 최초의 모터스포츠들이 실제 대부분 이런 곳에서 치러졌기 때문이다. 120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상설 서킷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말 그대로 일반 도로 중에서 인적이 드문 곳을 고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악 도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힐클라임은 실로 다양한 차종들이 등장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인디카나 퇴역한 F1 레이스카를 개조하는가 하면, 옛날 랠리카도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자유로운 차종만큼이나 코스도 자유분방(?)한 편인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기도 하고, 급격한 각도의 블라인드 코너가 갑자기 등장하기도 하는 등 위험한 요소들이 많은 편이다. 그만큼 하드코어한 특성이 있으며, 엄청난 담력이 있지 않은 한 도전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시가지 서킷
상설 서킷의 가장 큰 약점은 접근성이다. 대부분 도심에서 5~10km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는 부지 선정과 더불어 소음 등으로 인한 민원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모나코나 마카오,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는 부지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도심의 도로를 막아서 서킷으로 개조해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시가지 서킷이다. 포뮬러E와 같은 전기자동차 레이스는 배기가스 배출과 소음이 적어 오히려 시가지 서킷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간혹 도심의 도로가 아닌 도시 공원을 서킷으로 개조하는 경우도 있는데, 호주의 앨버트 파크와 캐나다의 질 빌너브 서킷이 그러하다. 이런 시가지 서킷은 늘 경기를 치르는 게 아니라 기존 도로를 활용하는 특별 서킷이라 경기장이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대부분 시가지 서킷은 고정적으로 경기를 치른다.
시가지 서킷은 일반 도로의 특성을 그대로 떠안아 대체로 안전을 위한 런오프가 거의 없고, 서킷의 폭이 좁으며, 노면 상태도 울퉁불퉁하기 일쑤다. 평소 온갖 종류의 차가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접지력도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연습주행 때와 실제 레이스 당일 날 트랙의 접지력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트랙 에볼루션’이라고 부른다. 평소 교통량이 많은 모나코나 마카오는 트랙 에볼루션이 굉장히 큰 편이다.
#오벌트랙
영어권에선 스피드웨이(Speedway)라고 부르는 서킷은 대부분 타원형의 오벌트랙(Oval Track)을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양쪽 두개의 직선을 이어 붙인 형태의 타원형이다. 오벌트랙은 상설 서킷의 일종으로, 상설 서킷이 일반 도로를 극단적으로 압축해 디자인한 것이라면, 오벌 트랙은 그중에서도 미국의 자동차 문화나 도로상태를 농축시킨 것이라 봐도 좋다. 미국 특유의 서킷이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 금주령 시대에 술을 싣고 경찰을 피해 냅다 달리던 문화가 오직 직선으로 누가 더 빨리 달리는가를 판가름하는 미국적인 레이스가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마치 테스트 트랙처럼 선회 구간에 가파른 경사를 준 타원형 주로에서 오직 한 방향으로 계속 돌기만 하는 터라, 미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마치 경마를 보는 듯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물론 사실은 단순히 돌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드라이버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데다가 워낙 속도가 빨라 한번 충돌이 나면 연쇄적으로 큰 사고로 번지기 때문에 극한의 쾌락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나스카나 인디카가 오벌 트랙에서 레이스를 자주 개최하며, 포뮬러 드리프트 역시 오벌 트랙을 일부 할애해 레이스를 개최하기도 한다.
그 동안 ‘모터스포츠’라고 했을 때 ‘서킷’만 상상했다면 큰 오산이다. 압도적인 스케일, 무대 자체로 장관이 되는 경기장도 있을 것이며, 자동차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가는 경기장도 있다. 경기장이라는 주어진 상황에서 드라이버들이 고난이도의 도전을 극복하거나 혹은 좌절하는 여러 모습들이 연출됨으로써 모터스포츠 마니아들은 비로소 만족할만한 스릴을 느끼는 것이다.
출처: 한국타이어 매거진 <MiU Vol.16> / 박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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