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티는 항상 최고 성능을 발휘하고 다른 차량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술성을 자동차 디자인으로 녹여낸다. 부가티는 다른 회사와는 다르게 무려 백 년 동안 지금과 같은 위상을 항상 지켜오고 있다. 과연 부가티는 창업 이후 어떻게 지금까지 같은 위상을 지켜오고 있는지 부가티의 역사 속에서 알아보자.
속도에 대한 열정, 철길에서도 달리다. Auotorail
(1932)
부가티는 프랑스에서 고속철도 입찰에 시도하였고 다양한 기업들과의 경쟁을 뚫고 결국 철도 위에서도 최고속도를 위해 도전하게 되었다. 장부가티는 열차 개발될 때마다 시험 주행을 하였으며 부가티의 최종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열차가 되는 것이었다. 다양한 시도를 거치며 부가티는 1934년 10월 시속 192km/h의 속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 열차가 되었다. 장부가티는 열차 사업과 함께 레이싱 그리고 신차 디자인 개발에 몰두하며 바쁜 와중에도 다양한 신차를 만들어낸다.
부가티도 전기차를 만들었다! Type 56
에토레 부가티는 공장과 인근 주변 지역을 가볍게 돌아다니고자 간단한 자동차가 있었으면 하여 전기자동차를 제작하였다. 두 명만이 탑승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자동차는 오로지 전기의 힘으로만 움직였으며 에토레만이 타고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에토레 부가티에게 전기 자동차인 타입 56의 생산을 요구하였지만 실제로 생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술성의 끝판왕, Type 57 Atalante
(1934)
타입 57은 1934년 전쟁 전에 파리 모터쇼를 통해 공개되었다. 타입 57은 S, C, SC 등 여러 가지 시리즈로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등장하였다. 아틀란테라는 이름은 그리스에서 가장 젊고 빠른 여성 사냥꾼의 이름에서 모티브를 얻어 빠른 아름답고 강력한 성능을 보여줄 타입 57에 붙여졌다. 타입 57 아틀란테는 2인승 쿠페로 유려한 라인을 가지고 있는 디자인으로 럭셔리함을 갖추고 있었다. 직렬 8기통 엔진은 135마력의 최대출력으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였다.
타입 57 아틀란테 중 시리즈 SC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자동차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려하고 스포티한 라인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름다운 외관과 희귀한 만큼 현재 약 464억 원에 거래된 가장 비싼 클래식 카로 기록되고 있다.
부가티 타입 57SC 아틀란틱은 천재적인 자동차 디자인으로 유명한 장부가 티의 손에서 태어났다. 특히 컨셉카 제작 중에 차량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지느러미는 양산형에도 불필요했지만 디자인적 요소를 위해 그대로 적용되었다. 차량의 반을 갈라놓은 지느러미는 여전히 타입 57SC 아틀란틱 디자인의 정점으로 손꼽히고 있다.
부가티 타입 57SC 아틀란틱은 직렬 8기통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최대출력 170마력의 성능을 발휘하였다. 현재 지구상에 단 3대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명한 컬렉터들이 현재 소유 중이다.
2번 연속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우승하다.
(1937, 1939)
모터스포츠 경기에는 빠짐없이 도전했던 부가티 사는 1937년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당시 사용한 차량은 타입 57의 섀시를 기반으로 제작한 타입 57G였다. 뭉뚝하고 단단한 다자인으로 '탱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이 레이스 카는 1937년에는 137km/h의 속도로 당시 르망 레이스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질주하였으며 1939년에는 평균 속도 140km/h로 질주하며 자신이 세워놓은 기록을 깨기도 하였다.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의 이른 죽음
(1939)
부가티가 르망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그 해에 아쉽게도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이자 부가티 사에 큰 업적을 남긴 장 부가티가 르망에서 우승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시험운전을 하던 중에 사고로 인해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된다. 장 부가티가 세상을 뜨고 며칠 뒤 바로 세계 2차 대전에 발발하게 된다.
독일군으로부터 빼앗긴 몰샤임 공장
(1940)
1940년 독일은 수륙양용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 프랑스 몰샤임에 위치한 에토레 부가티의 공장을 현재 가치로 약 18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구입하게 된다. 에토레 부가티는 당연히 원치 않았지만 독일의 강압적인 요구로 어쩔 수 없이 판매하였다.
다행히 독일군의 패배로 1945년 부가티는 다시 몰샤임 공장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였고 이로 인해 새로운 차량을 생산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모터스포츠와 속도에 대한 열정으로 전쟁 직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바로 우승을 따내게 된다.
에토레 부가티의 죽음
에토레 부가티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전쟁 중 공장을 빼앗기게 되면서 무기력 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가티를 다시 일으키지 못하고 독감과 각종 병에 걸리게 된다. 결국 1947년 군 병원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점점 추락하는 부가티
(1951~
에토레 부가티가 떠난 부가티 사는 홀로 떠돌아다니다가 로널드 부가티(에토레 부가티의 첫 아내의 아들)가 부가티 사를 이끌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차량은 개발하지 않았고 이전에 생산하였던 차량을 관리해주거나 군대가 사용할 엔진을 생산하였다.
1956년에는 47년 동안 부가티 사의 차량을 생산해낸 몰샤임 공장의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는 약 7,900대의 차량이 만들어졌고 부가티의 역사가 담긴 그런 공장이었다.
이후 부가티는 다른 회사에 팔리면서 군과 비행기에 들어가는 엔진을 생산하였다.
부가티 답지 못한 부가티, EB110
(1991)
1987년 기업가이자 자동차 딜러였던 로마노 아르티올리(Romano Artioli)가 부가티의 상표권을 구매하여 부가티 오토모빌 주식회사(Bugatti Automobili S.p.A)를 설립한다. 이때 부가티는 몰샤임이 아닌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만들어진다.
그들은 EB110을 제작하여 1991년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한다. EB110은 람보르기니를 디자인하였던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하였으며 아쉽게도 곡선미가 많고 아름다웠던 부가티에 비해서 EB110은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EB110은 V12 엔진을 장착하고 수동 6단 변속기와 함께 결합하여 최대 560마력의 출력을 4바퀴에 모두 전달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람보르기니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람보르기니를 닮은 EB110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부가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부가티와 폭스바겐의 만남
(1998)
로마노 아르티올리는 부가티를 오랫동안 이끌지 못하고 1995년 문을 닫게 된다. 동시에 다우아 레이싱 유한회사가 사들이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
폭스바겐은 방황하던 부가티의 손을 잡고 제대로 된 21세기 부가티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폭스바겐은 4인승 스포츠 쿠페인 EB118을 선보이면서 부가티의 신차 개발을 시작하였다. EB118은 컨셉카로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하였고 단 두 대만 만들어졌으며 양산이 되진 않았다.
가장 빠른 자동차 부가티 베이론
(1999)
폭스바겐은 새로운 신형 부가티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하였다. 많은 도전으로 베이론의 디자인을 완성한 EB 18/4 컨셉카가 1999년에 공개되었고 베이론은 점차 완성되었다.
완성된 부가티 베이론은 부가티 사의 전통적인 양식을 따르고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었다. 디자인에 더불어 괴물 같은 성능을 발휘하는 베이론은 에토레 부가티가 추구했던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 자동차였다.
부가티 베이론은 폭스바겐에서 제작한 W16기통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수동 7단 변속기와 결합하여 1,001마력의 최대출력을 발휘하였다. 최고 시속은 407km/h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30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주목을 받았다.
다시 몰샤임에 자리를 잡은 부가티
(2005)
에토레 부가티가 부가티 사를 시작한 장소이자 꾸준히 차량을 생산한 몰샤임에 다시 부가티 공장이 새롭게 지어졌다. 에토레 부가티 생가 옆에 자리 잡은 부가티 공장은 하나의 예술공방처럼 소수의 인원만이 정성스레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11년, 베이론의 시간
강력한 성능과 독특하고 멋진 디자인으로 1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업그레이드를 해왔다. 하지만 후속작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베이론은 마침표를 찍었다.
베이론의 마지막인 La finale는 단 한 대만이 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제작된 La Finale는 W16 엔진을 얹고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와 결합하여 1,200마력의 최대출력과 초기 모델보다 약 30km/h 늘어난 431km/h까지 달릴 수 있다.
더욱 빠른 속력을 향해서, 부가티 시론
(2017)
2017년 부가티 사는 베이론의 후속을 그란투리스모 게임 속에 등장하는 부가티 비전 그란투리스모 콘셉트카(Bugatti Vision GrandTurismo Concept)를 통해서 시론을 발표한다.
부가티 시론은 부가티 사에서 활약하였던 루이 시론(Louis Chiron)으로부터 이름을 따왔다. 시론의 디자인은 미래지향적이며 라인을 더욱 극대화하며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부가티의 전통적인 말발굽 그릴은 전통성을 보여주고 가죽으로 뒤덮인 실내는 고급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시론은 폭스바겐에서 개발한 W16기통 쿼드 터보 엔진과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와 결합하여 1,500마력의 출력을 4바퀴에 전달한다. 최고 시속은 442km/h이며 베이론에 이어서 또다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의 기록을 세울 예정이다. 시론의 가격은 역시나 꿈의 가격인 약 30억 원으로 책정되어있다.
100년 동안 빠르고 비싼 차를 만들 수 있는 이유
많은 자동차 회사들은 세계 2차 대전이나 혹은 다른 이유로 회사가 어려워져 주인이 바뀌게 되면 대부분 자동차들이 본래의 성격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가티 사는 조금 다르다. 창업자 에토레 부가티는 자동차를 제작하면서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동차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 비판에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신념에 맞는 자동차를 만들어왔다. 끝까지 지켜낸 신념은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도 이어졌다.
여전히 우리는 부가티라는 자동차 회사를 언급하면 먼저 럭셔리한 외관과 비싼 가격 그리고 엄청난 스피드를 떠올리게 된다. 부가티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데에는 창업자의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ditor GB-
사진출처 및 참고: bugatt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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