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전부터 거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으로 받아본다. 자동차 정보도 마찬가지다. 신차 소식, 시승기, 칼럼, 더 나아가 매거진까지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보는 것뿐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고, 제공하는 역할까지 한다. 개인 블로그, 커뮤니티 사이트 등 다양한 인터넷 매개 수단을 통해 그들은 미처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을 공유한다. 인터넷 댓글에선 칭찬받는 차보다 욕먹는 차 발견하기가 쉽다. 오토포스트가 (그나마) 악플 없는 국산차 세 대를 소개한다. 오늘은 '과거 편'이다.
악플 없는 국산차 (과거 편)
기아 세피아(1992년 9월 ~ 2000년 5월)
'기아 세피아'다. 기자도 이 차를 타고 다녔었다. 수동 5단 변속기와 1.5 DOHC 엔진이 탑재된 '뉴 세피아'였다. 세피아는 기아자동차의 첫 고유모델이자, 국산 차 최초로 디자인과 더불어 플랫폼까지 독자 개발된 승용차였다. 원래는 마쯔다의 차체를 가져다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마쯔다가 기아차에 경계심을 갖고 기아차의 의뢰를 거부하게 되어 기아차는 독자적으로 차체를 개발하게 된다.
기아차는 스포티지 차체 개발 때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피아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개발했다. 당시 한국의 자동차 기술 발전에 비해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개발되었다. 더불어 기아차는 가솔린 엔진도 독자적으로 개발하게 된다. 세피아는 스포티지와 함께 1991년 도쿄 모터쇼에서 데뷔하고, 1992년 9월에 출시된다. 당시 국산 차들의 최고속도가 180km/h를 넘지 못했었는데, 세피아는 200km/h 이상을 달렸었다.
세피아의 판매량은 '뉴 세피아'때부터 급증한다.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둥글게 다듬은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주행성능도 인정받아 독일 자동차 전문지가 실시한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소형차 부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세피아는 국산 섀시로써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단단하고 견고한 차체 덕에 코너링도 비교적 우수했고, 독자 개발한 엔진 등 동력계도 우수한 편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세피아는 월드 랠리 우승 이력도 새길 수 있었다.
유럽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입맛에 딱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말하면, 국내 소비자들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딱딱한 서스펜션 덕에 코너링은 안정적이었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편의 옵션이나 실내 마감 품질 역시 국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던 차 중 하나다.
쌍용 무쏘 (1993년 8월 ~ 2006년 4월)
쌍용자동차의 '무쏘'다. '원조 고급 SUV'라 할 수 있는 차량이다. 무쏘 개발 당시의 프로젝트 명은 FJ(Future Jeep)였다. 세련된 승용차 감각을 겸비한 고급 SUV로 초점을 두고 개발된 차량이었다. 프로토 타입 10대, 프로토 카 46대, 파일럿 카 90대 등 총 146대의 테스트 카와 함께 수많은 개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만큼 완성도도 우수했다. 디자인은 영국 왕립 예술 대학의 켄 그린리 교수가 맡았다. 아직까지도 무쏘의 디자인은 칭찬받고 있는 요소 중 하나다.
초기 엔진은 메르세데스-벤츠의 2.9리터 디젤 엔진이었다. 1995년부터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라이선스를 취득해 창원 공장에서 엔진을 생산했다. 즉, 1995년 이전의 것은 순수 메르세데스 엔진이다. 무쏘는 갤로퍼와 같은 박스형 SUV가 아니었다. 당시로썬 파격적인 디자인이었고, 이 덕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거웠다. 1994년에는 우수 디자인 상품 선정제 우수 디자인상, 1994년과 1996년에는 영국 버밍엄 모터쇼에서 4륜 구동 부문 오토 디자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출시 이후 2.3리터와 3.2리터 엔진을 추가해 가격 폭을 늘렸다. 국산 SUV 최초로 에어백과 TCS, ABS, 전자식 4WD 전환 스위치 등을 적용했으며, 외관과 실내 디자인을 고급화했다. 단종될 즘, '렉스턴'이 후속 모델로 개발되었으나, 계획이 변경되어 무쏘는 렉스턴의 하위 모델로 구분된다. 이에 따라 카이런이 출시되기 전까지 무쏘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카이런이 출시되면서 단종된다.
쌍용 렉스턴 (2001년 9월 ~ 현재)
렉스턴의 명성은 초기형부터 '렉스턴 II'까지가 절정이 아니었나 한다. 현재까지도 렉스턴의 이름은 살아있지만, 과거 편에 렉스턴을 넣은 이유다. 2007년식 렉스턴 II 노블레스 모델을 10년 정도 타고 다녔었다. 요즘 세대들에겐 낯설겠지만, 2001년 출시 당시까지만 해도 렉스턴은 '부의 상징'이 되는 차이기도 했다. 당시 아이들이 아버지의 차가 렉스턴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을 정도니...
렉스턴은 앞서 언급했듯 무쏘 후속으로 나올 차량이었으나, 계획이 변경되어 무쏘의 상위 모델로 출시된다. 이에 따라 렉스턴 역시 "고급 SUV" 타이틀을 걸고 출시된다.
렉스턴의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맡았다. 인테리어는 메탈과 우드 그레인이 조화를 이뤘고, 국산 SUV 최초로 3명의 체형을 기억하는 메모리 시트가 적용됐었다. 뉴 렉스턴 때는 자사 최초의 3세대 커먼 레일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2.7리터 XDI 엔진으로, 당시 동급 최고 성능이었다. 변속기는 메르세데스-벤츠의 5단 변속기를 채용했고, 렉스턴 II도 이 변속기를 쓴다. 국산 SUV 최초로 차량 자세 제어 장치도 적용된다. 이 외에 LED 계기판, 실버 컬러 루프랙, 운전석 메모리 시트 등의 고급 편의 사양을 적용하고, 2.7리터 엔진의 출력을 176마력까지 끌어올려 현대기아차의 대형 SUV와 경쟁하게 된다.
고급 SUV 타이틀은 렉스턴 II까지 이어진다. 뉴 체어맨과 닮은 헤드램프 디자인을 적용하고, 엔진 출력은 191마력까지 높아진다. 노블레스 모델은 191마력의 최고출력과 41.0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2.7리터 직렬 5기통 엔진을 탑재했었다. 당시 출시된 렉스턴 노블레스는 렉스턴의 정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출시되는 차에도 흔하지 않은 편의장비와 옵션 등을 10년 전에 갖췄었다.
▲191마력 XTV 엔진
▲메르세데스 전진 5단, 후진 2단 변속기
▲자세제어 장치와 연동되는 파워 AWD 시스템
▲후진 연동 사이드미러
▲ SUV 최초 지상파 DMB
▲ 타이어 공기압 감지 시스템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2열 열선 시트
▲앞 좌석(조수석 포함) 8way 전동 메모리 시트
▲전자 제어 에어 서스펜션
▲전용 크롬 휠
▲프라이버시 글라스
▲연소식 히터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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