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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들

한국의 자동차 디자인과 이탈리아

by 유광재오일 2018.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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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발전은 눈부시다. 불과 50여년 만에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를 2005년부터 10년 넘는 기간동안이나 유지했던 국가가 되는 믿어지지 않는 발전을 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에 자동차산업을 일으켜서 이처럼 글로벌 규모로 성장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1975년에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함으로써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고유모델을 개발한 나라가 됐고, 그 이후 고유모델 개발을 계속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터키 등도 각각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에 고유모델 승용차를 개발했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지 못했고, 1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케냐의 자동차 메이커가 고유모델을 개발했지만, 체계적인 디자인 개발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글 / 구상 (국민대학교 자동차 운송디자인학과 교수)

이렇듯 우리나라 이후에 고유모델을 ‘제대로’ 개발한 나라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독자적인 차량 개발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고, 차체의 디자인 또한 개성이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가진 디자인을 개발해야 하는, 사실상 모순(矛盾)과도 같은 난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비롯해서 1990년대까지 국내의 각 메이커들이 개발했던 고유모델 중에는 이처럼 까다로운 디자인 개발 문제를 이탈리아의 거장 디자이너들의 손을 빌어 해결한 차종들이 다수 있다. 물론 ‘용병(?)’의 힘을 빌어 온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디자인 선진국의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고, 그를 통해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자동차디자인과 자동차산업이 도약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에 커다란 영향을 많이 끼친 이탈리아와의 연결은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이 오히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계기가 되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자동차디자인이 조형 감각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지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는 대표적으로 죠르제토 쥬지아로 (Giorgetto Giugiaro, 1938~)와 그의 디자인 업체 이탈디자인 (ITAL DESIGN), 그리고 다른 디자인 전문업체 베르토네(Bertone) 등이 있다. 이들은 같은 이탈리아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죠르제토 쥬지아로는 20세기의 대표적 디자이너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며,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200 여종 이상의 차량을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중의 거장이다. 그는 2015년에 78세가 되면서 공식적으로 폭스바겐의 디자인 그룹 소속이 된 이탈디자인의 대표직을 은퇴했지만, 별도의 회사 ‘쥬지아로 디자인’의 고문 역할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디자인 특징은 세련된 기하학적 조형감각을 가지면서 양산에 무리가 없는 디자인이다. 고유모델 포니를 비롯해서 포니2 등에서 기하학적 형태와 볼륨감 있는 형태가 공존하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디자인을 보여준다. 쥬지아로의 이런 디자인 감각은 그가 17세부터 피아트에서 근무하면서 보여준 천부적인 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우자동차(현재의 한국GM)에서 1991년에 내놓았던 첫 고유모델 승용차 에스페로(ESPERO)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문 카로체리아(Carrozeria) 베르토네(Bertone)에서 디자인되었다. 카로체리아 베르토네는 설립자 지오반니 베르토네(Giovanni Bertone; 1884~1972)의 아들 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 1914~1997)가 1952년부터 이끌었지만, 각 시기 별로 여러 수석 디자이너들에 의해 디자인이 이루어졌는데,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직관적 조형감각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베르토네의 유명한 걸작 람보르기니 쿤타치(Countach)의 미래지향적 디자인은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후반까지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 1938~)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그런데 간디니 이전의 베르토네 수석 디자이너가 놀랍게도 쥬지아로 였다는 아이러니가 있기도 하다.

대우의 에스페로는 C-필러까지 유리로 둘러싸인 디자인으로, 이 시기에 베르토네가 작업했던 시트로앵(Citroen)의 XM 모델과 동일한 흐름의 감각이다. 직선적이면서도 쐐기 형태의 차체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노 그릴(no grill) 디자인, 그리고 C-필러까지 연장된 유리창 디자인의 에스페로는 그 시기에 최신의 유럽, 특히 이탈리아 감각의 디자인을 우리나라에 보여준 승용차였다.
 
에스페로 이후 대우자동차가 1997년에 내놓은 고유모델 중형 승용차였던 레간자(Leganza)와 소형 승용차 라노스(Lanos)의 디자인도 쥬지아로가 맡게 된다. 레간자는 한복과 기와 지붕의 곡선을 모티브로 해서 우아한 이미지의 차체 디자인으로 개발된다. 또한 라노스의 후속 모델 소형 승용차 칼로스(Kalos) 또한 쥬지아로의 디자인으로 개발된다.

이탈리아와의 인연은 쌍용자동차에서도 볼 수 있다. 국산 최초의 대형 SUV 렉스턴(Rexton)의 내외장 디자인은 쥬지아로에 의해 완성되었다. 렉스턴은 국산 최초의 대형 SUV로 육중한 중량감과 도시적인 이미지의 차체 디자인을 양립시킨 모델이라고 평가된다. 이후 2011년에 발매된 도시형 크로스오버 SUV 모델 코란도 C 역시 쥬지아로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콘셉트 카로 먼저 발표된 C200의 디자인 모티브를 그대로 양산 모델에 적용한 코란도C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소형 SUV로 여성 소비자들에게까지 SUV의 시장을 넓히는 데에 기여했다.

쥬지아로의 이탈디자인과 베르토네, 이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디자인 업체의 대비되는 디자인은 각각 보편적 세련미, 그리고 직관성을 가진 미래지향적 디자인으로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이들 메이커 이외에도 피닌파리나(Pininfarina) 역시 국내 메이커의 새로운 디자인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처럼 이탈리아의 디자인 업체들과의 관계가 많았던 것은 이들이 전통적인 카로체리아의 공예적 생산방식의 특징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대량생산에 적합한 조형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쥬지아로의 조형 성향은 장식적 요소를 거의 쓰지 않는 간결하면서 모던한 성향을 바탕으로 대량생산에 적합한 기하학적 조형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러한 디자인 감성이 1970년대의 전 세계적인 오일 쇼크 이후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동차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모던한 성향의 이탈리아의 디자인 감각은 한편으로 독일의 기능주의와 일맥 상통하는 유사한 특성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로써 국내 자동차 메이커의 차량 개발은 물론이고, 실무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감성이 본고장 유럽의 기술과 조형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으며, 소비자들의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안목 역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디자인은 이탈리아와의 밀접한 연관에 의해, 1980년대에 이미 자국의 특성을 가지기 시작한 일본 자동차디자인의 영향으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오늘날의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은 일본과 대조되는 한국의 특성을 가진 디자인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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