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보급이 빠르게 진행된 이웃나라 일본. 일본은 한국전쟁의 특수를 발판 삼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자동차의 보급에도 박차를 가했다. 특히 6~70년대에는 한 명의 소비자라도 더 끌어 오기 위한 뜨거운 경쟁이 시작되며 다수의 명차들이 태어났다. 이 시기부터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선, 보다 특별한 가치를 지닌 자동차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토요타 2000GT, 혼다 S시리즈, 프린스 스카이라인 등, 오늘날에도 명차로 회자되는 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 때다. 그리고 일본은 이 시기부터 모터스포츠가 융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본 자동차 업계의 경향은 오늘날 일본이 이룩한 자국만의 독자적인 자동차 문화를 형성하는 데 탄탄한 토대가 되었다.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선 특별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동차의 잇단 등장과 모터스포츠의 융성은 자동차 애프터마켓의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수의 자동차 튜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하나는 오늘날에도 일본계 튜너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HKS다.
HKS(株式会社エッチ・ケー・エス)는 1973년 세워진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이다. 이들은 주로 터보차저나 슈퍼차저 등과 같은 과급기를 비롯하여 배기 시스템, 전자제어장비, 서스펜션 등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용 CNG 연료 공급 장치는 물론, 초경량 항공기를 위한 엔진 제작이나 워터제트 엔진을 위한 부품을 개발하기도 하는 등, 사업 분야를 더욱 넓혀 나가고 있다. 사명인 HKS는 창업주인 하세가와 히로유키(長谷川浩之)의 H, 현 전무인 키타가와(北川)의 K, 그리고 출자 등으로 창업에 도움을 준 시그마 오토 모티브(シグマ・オートモーティブ)의 S를 각각 따서 지어졌다.
HKS는 1973년, 레이스용 엔진과 엔진 관련 부품의 개발 및 생산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창업주인 하세가와 히로유키는 “자신의 손으로 일본을 넘어 세계 제일의 독자적인 레이스 엔진을 만들겠다”는 열정을 품은 사나이였다.
HKS가 처음으로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내놓은 작품은 바로 1974년에 선보인 터보차저 키트, ‘FET터보’다. 이는 일본 자동차 업계 최초의 키트 형태로 판매된 과급장치 패키지로, 기존의 엔진에 추가로 장착하는 방식으로 탑재되었다. HKS가 처음 선보인 터보차저 키트는 ‘켄메리 스카이라인’으로 유명한 4세대 닛산 스카이라인(C110형), 그 중에서도 2.0리터 직렬 6기통 L20 엔진 탑재 차량을 위한 것이었다.
스카이라인의 L20 엔진은 순정 상태에서 115마력의 최고출력과 16.5kg.m의 최대토크를 내는 엔진으로 스카이라인 라인업의 중간급에 해당하는 성능이었다. 하지만 FET터보를 장착하게 되면 160마력의 최고출력과 23.0kg.m의 최대토크를 자랑하는 고성능 엔진으로 변신했다. 순정 사양에 비해 무려 40%가량의 성능 향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라인업 최강의 모델인 GT-R 사양과 맞먹는 성능이었다.
L20 사양의 스카이라인을 GT-R급의 성능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HKS의 FET터보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폭발적인 호응과 함께 HKS의 이름을 알렸다. HKS는 자신들의 터보차저 키트가 흥행하고 5년 뒤부터 자동차 제조사들이 순정 사양으로 양산차에 터보를 실으며 본격적인 터보의 시대를 열었다고 말한다. 77년에는 FET터보의 성능을 한층 더 끌어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자사의 이름을 건 터보차저 키트를 잇달아 내놓았다. 처음에는 스카이라인 L20SU 엔진용 키트로 시작하여, 이후에는 셀리카의 18R-G 엔진용의 키트도 출시하며 적용의 폭을 넓혀 나갔다. 70년대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터보 튜너로 명성을 쌓은 HKS는 1981년, 미국 지사를 설립하며 사세를 키워 나갔다.
70년대 이후부터 일본의 자동차에는 다양한 전자장비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자동차용 전자제어 부품은 자동차의 성능향상에 있어 큰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으며, 이내 자동차 업계의 주류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HKS는 이와 같은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미 각종 전자제어용 부품에 대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으며, 82년도부터 자사의 이름을 단 전자제어 부품들을 속속들이 내놓기 시작했다. HKS의 전자제어 부품들로는 터보 타이머(Turbo Timer)를 비롯하여 밸브 제어 장치인 EVC(Electronic Valve Controller), 연료 제어 장치 F-CON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흡기 제어장치인 VPC, 인젝터 제어장치인 AIC 등이 있다.
그리고 1984년, HKS는 창업 초기의 꿈이었던 독자개발의 레이스용 엔진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HKS 134E 엔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엔진은 미국 랠리와 드래그 레이스를 위해 개발된 엔진으로, HKS의 첫 레이스용 엔진이다. 이 엔진의 실린더 블록은 미쓰비시의 아스트론(Astron, G54B 혹은 4G54) 엔진의 것을 사용했으나 나머지는 모두 HKS의 자체제작 부품이다. 이 당시 HKS는 미쓰비시의 랠리아트 브랜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 엔진은 미국 랠리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일본에서는 더트 트라이얼 경기를 위한 엔진으로도 활용되었다.
HKS는 첫 레이스 엔진을 개발한 지 2년 만인 1986년에 새로운 레이스용 엔진을 내놓았다. 형식명 186E로 불리는 이 엔진은 후지 그랜드 챔피언(Grand Champion) 시리즈에 출전한 BMW의 M12 경주차용 엔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엔진은 직렬 4기통 2.0리터 DOHC 엔진으로, 실린더 당 5개의 밸브를 갖추고 있었다. 이 엔진은 5밸브 엔진의 특성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HKS의 레이스용 엔진 개발은 90년대에도 이어진다. HKS는 1992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300E 엔진을 내놓는다. 이 엔진은 3.5리터의 배기량에 5밸브 헤드, V형 12기통 구조를 가진, 철저하게 레이스를 위해 설계된 엔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엔진이 특별한 이유는 다름아닌 포뮬러 1에 출전하기 위한 엔진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2년의 시간을 거쳐서 개발된 이 엔진은 680마력/13,500rpm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으며, 경주용의 연료를 사용하면 700마력 이상의 성능을 발휘했다. 포뮬러 1용의 엔진이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튜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엔진 제작사로서의 HKS의 이미지를 크게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엔진의 뒤를 이어 태어난 엔진은 310E형 엔진으로, 포뮬러 1이 아닌 F3 레이스를 위해 변형된 버전의 엔진이다. 이 엔진을 탑재한 HKS의 F3 경주차는 1994~1999년의 전일본 F3 선수권에 참가하여 97년에 우승을 거두었다.
HKS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비단 자동차용 엔진만이 아니었다. HKS는 자동차용 레이스 엔진 외에도 모터사이클 레이스용의 엔진도 만들어 왔다. 1981년 처음 내놓은 경주용 모터사이클 엔진인 ‘HT600’은 배기량 600cc 단기통 엔진으로, 당시 이 엔진을 탑재하고 출전했던 경주용 바이크들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HT600의 뒤를 이은 HKS의 경주용 모터사이클 엔진은 88년도에 선보인 ‘200E’ 엔진으로, 배기량은 같지만 2기통 구조와 DOHC 2밸브 엔진이었다. 이 엔진을 탑재한 경주차량들은 당시 참가하고 있었던 다른 경주차를 압도하는 성능으로 보여주었고, 종국에는 95%에 달하는 팀들이 HKS의 엔진을 선택할 정도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확립했다.
본래 경주차용 엔진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진 HKS는 본격적으로 자동차 튜너로 활동하면서 자사의 부품을 이용한 완성차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들의 첫 완성차는 1983년에 등장한 ‘HKS M300’. 토요타의 셀리카XX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차는 공기역학에 충실한 차체 외장과 HKS의 트윈터보 시스템으로 무장했다. 특히 엔진의 경우, 본래의 셀리카 XX에 얹혀 있었던 5M-GEU 엔진은 전자식 연료분사기구가 적용된 엔진이었으나, 튜닝을 하는 과정에서 이를 제거하고 카뷰레터를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HKS는 자세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 차의 최고출력은 최소 400마력 이상, 최대 600마력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HKS M300은 강력한 엔진과 공기역학적 외장에 힘입어, 일본의 구 야타베 테스트 트랙에서 무려 301.25km/h라는 속도를 달성했다. 이는 당시 일본의 자동차 업계에서 최초로 300km/h의 벽을 돌파한 사례이며, HKS의 기술력을 증명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91년에는 새로운 컴플리트카, ZERO-R을 내놓았다. 이는 HKS M300 이후로 오랜만에 등장한 컴플리트카이며, 닛산의 스카이라인 GT-R(BNR32)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차는 207km/h를 넘나드는 최고속도와 높은 항속 주행 능력, 안락함, 안전기준 합격 등을 달성하는 것으로 목표로, ‘고출력’과 ‘고내구성’을 확보하는 것을 중점에 두고 개발되었다. 또한 유럽식의 컴플리트카를 따라잡기 위한 테스트를 거치는 등, 전반적인 완성도를 올리는 데에도 힘썼다. 이 외에도 HKS는 지금까지 다종다양한 모터스포츠 경기에 참전하며 경험을 착실하게 축적하고 있다.
HKS는 엔진 성능 개선이나 레이스용 엔진 개발, 컴플리트카 제작 외에도 서스펜션, 배기 시스템 등을 제작해 왔다. 서스펜션 관련 부품을 내놓은 것은 1994년, 독자개발의 코일 스프링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하여 1996년에는 아예 쇽업소버까지 직접 개발하여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 배기 시스템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로 특히 당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던 자동차용 엔드 머플러를 집중적으로 시장에 출시하였다. HKS의 알루미나이즈 머플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머플러는 애프터마켓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에도 HKS는 최신형의 자동차들을 위한 각종 튜닝 부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주력 제품군은 스포츠 성향의 자동차들을 위한 부품이지만 최근에는 토요타의 미니밴 모델인 알파드와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를 위한 부품들까지 생산하고 있다. 그 외에도 2000년대 초반부터는 복지차량(노약자/장애인용 차량)용 부품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2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슈퍼차저를 선보임과 함께 워터제트용 슈퍼차저의 공동개발, CNG 바이퓨얼 키트 등을 개발하는 등, 보다 다각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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