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볼보자동차가 V70의 AWD 버전에 XC란 부제를 달았다. 레저 활동 즐기는 고객의 관심에 용기 얻은 볼보는 2001년 첫 SUV인 XC90을 선보였다. 이후 2003년 XC70을 시작으로, 라인업을 살찌웠다. 90으로 시작해 60을 거쳐 최근 40으로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XC 시리즈의 뒤안길 어딜 봐도, 유행을 좇거나 타협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볼보자동차
바야흐로 SUV 시대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국내 SUV 판매량은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2014년 약 33만7,000대에서 지난해 약 46만4,000대까지 치솟았다.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도 SUV가 대세다. 심지어 “SUV가 없으면 장사 접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미 많은 제조사가 SUV로 중심 타선을 꾸렸다.
소비자가 SUV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 세단보다 우람한 덩치에서 뿜어내는 튼튼한 이미지가 한 몫 할 듯하다. 볼보자동차의 핵심가치인 ‘안전’과도 맞아 떨어진다. 고집스러운 안전에 대한 철학과 근사한 외모, 북유럽 가구의 따스한 감성 스민 실내 등 소비자가 원하는 요소를 정확히 짚었다. 오늘날 XC 시리즈는 볼보자동차의 주력으로 떠올랐다.
볼보 XC 시리즈의 역사는 1998년 등장한 V7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까지 XC는 별도 라인업이 아닌, V70의 가지치기 모델이었다. 중형 왜건인 V70을 밑바탕 삼아 최저지상고를 26㎜ 더 높이고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AWD)을 얹어 빚어냈다. 넓고 실용적인 왜건으로 임도주행까지 할 수 있어, 레저 활동 좋아하는 소비자의 수요까지 끌어 모았다.
V70 XC로 SUV의 잠재력을 엿본 볼보는 XC 시리즈를 별도의 라인업으로 꾸리려고 마음먹었다. XC90 프로젝트가 싹 튼 순간이다. 2001년 1월, 볼보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어드벤처 컨셉트 카’를 선보였고, 이듬해 볼보 최초의 중형 SUV XC90을 공개했다. S80과 V70 등의 앞바퀴 굴림 기반 P2 플랫폼을 밑바탕 삼아 독일산 경쟁자의 등짝을 겨눴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1998년 메르세데스-벤츠 M 클래스, 1999년엔 BMW X5가 한 발 앞서 중형 SUV 시장에 뛰어든 까닭이다. 그만큼 라이벌을 압도할 철저할 준비가 필요했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821×1,909×1,784㎜. 볼보 특유의 반듯한 외모와 맞물려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보닛엔 가솔린 T5와 T6 등 두 가지 엔진을 품었다.
결과는 성공적. 2003년 ‘북미 올해의 차’와 미국 자동차 매체 <모터트렌드>가 선정한 ‘올해의 SUV’ 상을 모두 거머쥐며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2012년 기습 도입한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모두 낙방할 때, 볼보는 10살 먹은 XC90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시속 64㎞로 차 앞의 25%만 고정 벽에 들이받는 테스트다.
제조사들은 경악했다. 스몰 오버랩 대책을 세우느라 바빴다. 충돌 에너지가 집약돼 처참히 부셔지기 때문. 실제 전방충돌 사망자 중 4분의 1이 이 유형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반면 볼보는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이미 1980년대부터 스몰 오버랩 사고에 대비했던 까닭이다. 2008년 선보인 ‘동생’ XC60도 별 보강 없이 시험을 치렀는데 최고등급을 받았다.
XC60은 XC 시리즈뿐 아니라 볼보자동차를 이끄는 핵심 모델이다. 본고장 유럽에서 출시 직후 약 4만 대를 팔았고, 2014~2016년 아우디 Q5와 BMW X3, 메르세데스-벤츠 GLK 등을 제치고 프리미엄 중형 SUV 부문에서 부동의 판매 1위를 지켰다. 2017년엔 볼보 역사상 최초로 단일차종 유럽 판매 30만 대를 넘어서며 ‘4번 타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편, XC90은 2014년 2세대로 거듭났다. 볼보자동차 역사의 변곡점이기도 했다. 신형 XC90은 새로 개발한 모듈형 플랫폼, ‘SPA(Scalable Product Architecture)’를 밑바탕 삼고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얹었다. 또한, 토마스 잉엔라트(Thomas Ingenlath)와 로빈 페이지(Robin Page) 등 두 스타 디자이너가 합류해 안팎을 근사하게 빚었다.
XC90을 필두로 S90과 V90, XC60과 S60이 차례로 새 뼈대와 심장으로 거듭났다. 최신작은 볼보의 첫 번째 콤팩트 SUV인 XC40이다. 전 세계적인 소형 SUV 인기에 발맞춰 볼보의 영토를 확장해나갈 주역이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425×1,875×1,640㎜. 현대자동차 투싼보다 25㎜ 넓고, 휠베이스는 2,702㎜로 32㎜ 더 넉넉하다.
국내 소비자도 XC40을 기다렸다는 듯 사전계약에만 1,000명이 몰렸다. 볼보자동차코리아가 올해 국내 시장에 마련한 물량은 1,500대. 출시와 동시에 3분의 2를 판 셈이다. XC90과 XC60 등 ‘형님’들에게 물려받은 근사한 비율과 톡톡 튀는 디테일로 2030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막둥이지만 ‘안전의 볼보’답게 준자율주행 시스템도 빠짐없이 챙겼다.
표정은 여느 XC 시리즈를 빼닮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막내만의 개성도 물씬하다. 가령 눈물샘 안쪽과 그릴 모서리를 뾰족이 다듬었다. 압권은 옆태. 지붕을 납작하게 빚는 유행에 아랑곳 않은 채, XC40은 SUV 본연의 멋을 추구했다. BMW X1보다 42㎜, 아우디 Q3보다 24㎜ 더 큰 키가 그 단서다. 대신 2열 도어 뒤쪽을 바짝 당겨 지루함을 덜었다.
“볼보의 중심엔 사람이 있습니다. XC40의 탄생을 가능케 한 기술이 따스함과 편안함을 주는 이유입니다.” 볼보 디지털 사용자 경험 수석담당, 안드레아스 로펠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실내에선 깨알 같은 버튼으로 조작하던 기능을 9인치 터치스크린이 꿀떡 삼켰다. 은은하게 감성 적시는 오렌지색 카펫도 남다른 포인트. 계기판 정보도 100% 디지털로 띄운다.
여성 고객을 위한 아이템도 눈에 띈다. 동반석 글러브박스엔 최대 2㎏ 무게의 가방을 걸 수 있는 고리를 마련했다. B필러 양쪽엔 돌기처럼 작은 고리, 천장 양 끝엔 추가로 2개의 고리를 달았다. 2열 좌석 뒤쪽엔 승객실과 짐 공간 나눌 그물망을 걸 수 있는 구멍을 뚫었다. 또한, 트렁크 바닥 커버를 세우면 쇼핑백 걸이 3개가 추가로 등장한다.
SPA 플랫폼을 뼈대 삼은 ‘형님’들과 달리, XC40은 차세대 소형차 모듈형 플랫폼, CMA(Compact Modular Architecture)를 품었다. 앞으로 S40과 V40 등이 나눠 쓸 최신 골격이다. 여기에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T4 190마력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짝 지었다. 1,400~4,000rpm까지 30.6㎏‧m의 두둑한 토크로 아담한 차체를 힘차게 끈다.
올 상반기 볼보자동차 글로벌 판매량은 31만7,639대. 2009년의 연간 판매량(34만 대)에 육박한다. 지난해 XC60과 XC90 판매가 전체의 절반이었다. 이제 ‘2018 유럽 올해의 차’ XC40도 나선다. 신기록 경신할 일만 남은 셈이다. 볼보자동차가 XC에 도전한 지 20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유행에 편승하기보단, 나만의 철학을 뚝심 있게 지킨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현대차 팰리세이드 테스트카 모음 (0) | 2018.10.23 |
---|---|
[스크랩] 현대차 대형 SUV 팰리세이드, 연비·제원 공개 (0) | 2018.10.20 |
[스크랩] 말리부 빼고 전멸한 다운사이징 세단들 (0) | 2018.10.15 |
쉐보레 중형 SUV 블레이저, 출시 임박 (0) | 2018.10.10 |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 톱10 (0) | 2018.10.08 |